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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SBS플러스 <나는 솔로> 남규홍 PD ⓒ ENA/SBS플러스

 
ENA·SBS플러스 예능 프로그램 <나는 SOLO>(아래 <나는 솔로>)의 작가 저작권을 둘러싼 갈등이 점점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나는 솔로>의 연출자 남규홍 PD가 자녀와 자신의 이름을 스태프 스크롤에 작가로 기재하면서 시작된 논란은 작가의 재방송료 편취 및 불공정 계약, 갑질 의혹으로까지 이어졌다.

시작은 남규홍 PD가 재방송료를 받기 위해 작가진에 이름을 올렸다는 폭로가 나오면서부터였다. 당시 남 PD는 "촌장엔터테인먼트에 방송작가협회 소속 작가는 없기 때문에 (작가들에게) 재방송료가 지급된 적이 없고, PD들 역시 작가 스크롤에 이름을 올린다고 해서 재방송료를 받을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또한 남 PD의 자녀 이름이 스태프 스크롤에 포함된 부분에 대해서도 남규홍 PD는 "<나는 솔로>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딸이 자막을 전담으로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솔로>에서 일하는 저연차 작가들이 계약서도 작성하지 못한 점, 문화체육관광부 권고에 따른 표준계약서 작성을 요구한 작가에게 저작권 관련 항목을 삭제한 계약서를 내밀었다는 제보, 스태프 스크롤에 이의를 제기한 작가들에게 프로그램 하차를 요구했다는 의혹 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작가들이 한 게 뭐가 있냐", "(계약서 미작성은) 바빠서 놓치는 경우가 있다. 이 바닥이 원래 그렇다. 내가 사과할 필요가 있냐?"는 등의 과격한 남 PD의 발언 역시 빈축을 샀다.

상황은 점차 악화됐다. 지난 15일 방송작가협회가 남규홍 PD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6일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 유니온)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 <나는 솔로> 제작사인 촌장엔터테인먼트(대표 남규홍)를 서면계약 위반과 방송작가에 대한 권리 침해로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솔로>에서 불공정 행위가 있었는지, 서면계약 위반이 있는지 여부는 차후 문체부 조사를 통해 밝혀질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사안을 두고 예능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처우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하고 일을 하다 보니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고, PD에게 이의제기를 하면 쉽게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불안정한 고용환경이 이번 일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2023년 11월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와 (사)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문체부 권고 기준이 담긴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 체결 비율은 26.8%에 불과했고 권고를 따르지 않는 자체 용역 계약서 작성 비율이 53.1%였다. 게다가 계약서 자체를 체결하지 않고 일하는 비율이 여전히 20.1%로 전체의 1/5을 넘어섰다. 종편 케이블(20.6%), 비지상파 방송(31.3%)이 상대적으로 지상파 등에 비해 미체결 비율이 많았고, 프로그램별로는 시사교양(27.4%) 작가가 가장 많았으며 드라마, 예능(17.3%) 작가가 그 뒤를 이었다.

예능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현실
 
 ENA·SBS플러스 <나는 SOLO> 포스터 이미지

ENA·SBS플러스 <나는 SOLO> 포스터 이미지 ⓒ ENA·SBS플러스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예능 작가들은 <나는 솔로>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10년 이상 예능 작가로 일하고 있는 A씨를 만나 카메라 뒤에 가려진 예능 작가들의 현실에 대해 들어봤다. A씨는 17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사실 남규홍 PD의 말에 맞는 부분도 있다. 보통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을 시작하고, 바쁘다 보면 미뤄지는 경우도 많다. 계약서도 안 쓴 상태로 방송이 나가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못쓸 수도 있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 바닥은 다 그렇다'고 말하는 태도는 불편했다"고 말했다.

"(A씨의 경험상) 보통 일을 시작할 때 계약서를 쓰지 않고, 프로그램 편성이 확정되고 나면 업무가 일정 부분 진행되다가 혹은 첫 촬영을 하기 전에 계약서를 쓴다. 방송사 입장에서 편성이 확정되고 프로그램 이름도 생겨야 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그제서야 계약서 내용을 확인하면 내용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미 일을 상당 부분 했고 첫 촬영을 앞두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의 제기를 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이의제기를 하면 (프로그램을) 관둬야 하는데 결국 제가 여태까지 했던 일에 대한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계약서를 쓴다고 해도 문제는 계속된다. 문체부가 권고한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에는 프로그램 편수, 길이와 원고료 등에 관한 항목만 있을 뿐, 근로시간 및 근로조건에 관한 항목은 찾아볼 수 없다. 촬영 기간에는 퇴근한지 2시간 만에 다시 출근하기도 하는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지만 이에 대해 항의할 수도, 적절한 수당을 받을 수도 없다. 문체부가 권고한 표준계약서가 유명무실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예를 들어, 오전 8시에 촬영을 시작하기로 했다. 미리 와서 출연자들 헤어, 메이크업 해야 하니까 오전 5시쯤 모인다. 출연자를 5시에 부르면, 적어도 제작진은 4시에는 와서 촬영장을 점검하고 세팅하고 준비한다. 그렇게 시작해서 촬영이 일찍 끝나면 밤 12시다. 출연자에게 다음 일정 알려주고 정리하고 퇴근하면 이미 새벽 2시. 다음 녹화를 하려면 또 똑같이 4시에 만나야 한다. 5일 연달아서 이런 스케줄로 일을 한 적도 있다.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일주일에 몇 시간을 일했는지 계산하기 어렵다. 메신저로도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가서도 문서 작업을 더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저연차 작가들은 항상 페이퍼워크를 하는데 그 시간도 사실은 근로 시간이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이 시즌제로 제작되다 보니, 예능 작가들의 고용 환경은 더욱 불안해졌다. 방송 작가의 급여는 방송 회차를 기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A씨는 "기획기간이 3개월 정도라면 방송은 한 달 반에 불과하다. 보통 6회에서 8회 정도다. 시즌제 예능으로 바뀌면서 기획 기간은 더 길어지고 방송 회차는 더 짧아졌다. 만약 한 달 급여가 200만 원이라면, 기획기간에는 그 절반도 보장 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작가 임금은 보통 (월급이 아니라) 주급으로 지급된다. 예를 들어, '방송사 내규상 최대 8주 밖에 지급할 수 없다'고 하면서 기획비를 8주간만 지급하기도 한다. 물론 내가 일한 기간은 12주가 될 때도 있고, 14주가 될 때도 있다. 12주 동안 일했는데 최대 8주 밖에 못 준다면 8주간의 주급만 받는 것이다. 한 달 급여가 200만 원이라면 (기획기간이라서 절반에 해당하는) 일주일에 25만 원을 받는데 8주 밖에 인정을 못 받았으니 12주 동안 일을 하고 200만 원을 받은 셈이다."

편성이 확정되고 방송이 시작되기까지, 일을 시작하고도 상당 기간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석 달을 기다려서야 임금 지급을 약속받았음에도 방송사나 외주제작사 내부 사정 등 황당한 이유로 미뤄지는 경우도 있다고.

A씨는 "결재권자가 휴가, 출장 등의 이유로 부재중이라 사인해 달라고 말씀을 못 드려서 입금이 또다시 미뤄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아무도 화를 내지 못한다"며 "막내 작가가 월세를 내야 하는데 어떡하냐. 이럴 때면 선배 작가들이 월세 내라고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그냥 월세 만큼의 돈을 주셨던 선배도 있었다. 이런 일이 영세한 외주제작사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상파, 종편 케이블 회사에서도 일어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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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저도 임금을 아예 못 받는 경우도 생긴단다. A씨는 "일단 일을 시작해서 2~3주 가량 회의를 진행하고 그동안 매일 출근했다고 치자.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꼭 이 출연자가 필요했는데, 그 출연자와 조율을 못해서 방송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러면 그 프로그램도 끝나고 작가들도 돈을 못 받고 일자리를 잃는 것이다. 그런 일은 너무 흔하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은 문제제기를 하기도 쉽지 않다. 계약서 대로 임금 지급을 이행하지 않았더라도 방송국, PD와 법정 공방을 벌이는 일은 작가를 완전히 그만둘 각오가 아니면 마음먹기 어려운 일이다.

한편 <나는 솔로> 사태의 시작이었던 재방송료는, 남규홍 PD의 해명대로 남 PD가 작가협회에 가입하지 않고 재방송료를 가로채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방송작가협회는 15일 남규홍 PD에 대한 규탄 성명에서 "방송작가협회는 작가들의 저작권을 신탁받는 곳으로 가입과 무관하게 재방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저는 방송작가협회에 가입하기 전에 재방료를 받은 적이 없었다. 가입 없이 받을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지상파 기준 60개월 동안 현업에서 방송 일을 해야만 협회에 가입할 수 있는데, 기획기간을 제외하고 방송된 기간으로만 60개월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8부작 시즌제 예능에서 8개월 동안 일했어도, 두 달 정도만 인정되는 것이다. 보통 빠르면 6~7년, 늦으면 10년 정도 일한 후에야 협회에 가입하는 편이다. 협회에 가입하면 방송작가협회 이름으로 입금된다."
나는솔로 예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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