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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대통령권한대행에서 물러날 때부터 고건 전 국무총리는 열국지의 제환공-관중 고사를 강조했습니다.

 

제환공이 관중을 신임하는 자신의 원칙을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라고 설명했다는데, '의심 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쓰는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듣기엔 좋은 말이긴 하지만, 이 말은 실제 정치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라고 봅니다. 제왕학의 요체는 '끊임없는 의심'이기 때문입니다.

 

제환공부터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지도자 유형입니다. 춘추5패의 첫 번째로 꼽힐 정도로 정치를 잘한 건 관중이 살아있을 때 뿐, 나중에는 포숙의 경직된 정치, 포숙이 죽은 뒤에는 간신들의 전횡이 이어졌습니다. 그 자신도 사망 후 67일 동안이나 시신이 방치돼 악취가 궁전에 가득 차는 참상을 초래했습니다.

 

기분 나쁘지만, 지도자에게 의심이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절대 군주시대엔 신하들의 반역 여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지도자는 아랫사람들이 과연 소신이 맞아서 자신을 따르는지, 또 시간이 흐르면서 타성에 젖어 창의력을 발휘할 생각은 않고 급여만 축내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역사책 속의 성공한 군주들은 거의 비슷한 인물평을 받고 있습니다.

 

"괴로움을 나눌 수 있지만, 즐거움을 함께 할 수는 없는 위인이다." 월나라 구천, 한고조 유방, 청나라의 옹정황제 등 무수한 '현군'들에게 적용되는 평가입니다.

 

공이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지만, 그것이 반복돼 상을 받아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교만해진 자는 끝내 거역의 칼끝을 돌리게 마련이니 시간이 갈수록 칭찬은 줄어들고 의심만 늘어가는 법입니다.

 

임금들이 측근들에게 가장 의심의 눈초리를 높이는 것은 이제 세상을 태자에게 물려줘야 할 때입니다.

 

조선의 태종 이방원과 당나라의 태종 이세민은 묘호뿐만 아니라, 성격, 행적 등에서 닮은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측근에 대한 유언입니다.

 

당태종은 죽음에 임박해 공신 이세적이 과연 태자에게도 진심어린 충성을 바칠지를 걱정했습니다. 반심을 품을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태자가 이세적에게 은혜를 베푼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당태종은 느닷없이 이세적에게 머나먼 곳으로 좌천 명령을 내렸습니다. 동시에 태자에게는 "네가 즉위한 후 이세적을 다시 불러들여 재상으로 삼으면 그는 너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고 일렀습니다. 만약 이세적이 좌천 명령에 불응하면 당태종은 그 자리에서 그를 죽일 작정이었습니다.

 

이세적은 명을 받자마자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부임지로 떠났다고 합니다. (이세적이 만약 항명해서 처형됐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가 바로 고구려 멸망 때 당나라군의 총사령관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태종이 세종대왕에게 황희를 남겨준 것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세종 즉위 무렵, 황희는 귀양 중이었습니다. 태자(양녕대군) 폐위를 반대한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즉위를 반대한 황희를 중용해 태평성대를 연 세종대왕의 인덕을 추앙합니다. 하지만 다른 군주들의 사례를 살펴볼 때 아드님 세종의 시대를 염려한 태종의 숨결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태종은 자신의 사후에도 절대 사면해서는 안 되는 인물을 세종에게 단단히 못 박아 뒀습니다. 그게 바로 권신 이숙번입니다. 선왕의 유언대로 세종은 이숙번의 귀양을 절대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태종 실록을 편찬할 때 한번 불러들인 적은 있지만 그 일이 끝나자마자 다시 귀양지로 돌려보냈다고도 합니다.

 

임금만 신하들을 의심한 게 아닙니다. 신하들도 임금을 의심했습니다. 지금은 신임 받고 있지만 또 무슨 꼬투리를 잡혀서 멸문지화를 당할지 모르는 시대였습니다. 10년, 20년씩 재상 자리를 지킨 사람들은 처절한 생존 스토리의 주인공들입니다.

 

한나라의 재상 소하는 전선에 나간 임금이 자주 도성으로 전령을 보내는 것을 보고 자신이 의심받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소하는 힘없는 백성의 땅을 뺏는 등 악행을 일부러 저질렀습니다.

 

과연 끊임없이 나타나던 전령은 사라졌습니다. 전선에서 돌아온 황제는 무수한 백성들의 고소장을 건네주면서 "왜 이렇게 인심을 잃었어"라고 핀잔을 했을 뿐, 표정은 무척 부드러웠다고 합니다.

 

진시황제의 통일을 위한 마지막 전쟁에 나선 것은 노장 왕전입니다. 60만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를 정벌하러 떠나는 자리에서 왕전은 진시황에게 함양성 내 좋은 땅과 별장 몇 곳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출정 후에도 그는 몇 번 씩이나 땅을 달라고 간청하는 전령을 보냈습니다. 측근이 "너무 심하지 않냐"고 충고하자 왕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임금은 진나라 전군을 나한테 맡겼는데, 내가 이렇게 재물이나 탐내는 인간으로 처신하지 않고 어떻게 의심을 면하겠나."

 

지금은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킬 거라는 의심은 필요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무능력자라는 의심을 해소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제는 의심 해소 대상이 윗사람뿐만 아니라 동료와 아랫사람에게까지 확대됐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급변한 환경 속에서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라면 의연하게 물러나는 게 최선일지도 모릅니다. 청나라의 재상들은 눈칫밥이 목에 걸리기 시작하면 기나긴 상주문에 일부러 서너 군데 오자를 내서 임금으로 하여금 자신을 '편하게 자를 수 있는' 핑계거리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청나라 최고의 명재상 장정옥은 이게 지나쳐서 그만 세 번째 섬기는 임금 건륭의 분노를 사고 말았습니다.

 

물러나고 나아가는 건 참 어려운 일인 모양입니다. 높으신 분들이나 할 걱정이지 우리 같은 말단하고는 별 상관이 없겠습니다만.


태그:#고건,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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