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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눈이 깜박깜박 한 숨도 못 잤어요
친구도 지켜주고 차들도 지켜주고
언제나 고생하지요 엄마처럼 바빠요
- 김대희 작 <신호등>.

친구랑 장난치다 선생님께 딱 걸려
지옥행 청소시간 먼지가 들썩들썩
끝났다 학원에 가자 다시는 장난 안쳐
- 김승우 작 <청소>.

기발하고 기특하며 거기다 장난 끼가 넘치는 풋풋함이 느껴진다. '신호등'을 보고 '엄마'를 떠올리는 수준이 예사롭지 않고, 개구쟁이가 '다시는 장난 안쳐'라는 다짐이 정겹기만 하다.

'어린이시조나라'에서 펴낸 <괴짜 선생님과 개구쟁이들>이란 시조집에 실린 작품이다. 지난해 경남 진주 수정초등학교 3학년 4반 학생들이 쓴 시조를 한 데 묶어 펴낸 것이다.

담임 신애리 교사(시조시인)가 학생들과 한 해 동안 시조짓기를 해 생산된 작품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신 교사가 이렇게 해서 펴낸 '선생님과 함께 가는 시조여행'은 이번까지 모두 11권째다.

신애리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한 해 한 권의 시조집을 묶어낸 셈이다. 신 교사가 아이들과 시조짓기를 하기 시작한 지 올해로 15년째다.

그는 "강산이 한번 바뀌도록 해온 일인데도 한 해도 예외없이 제게는 늘 새로운 투쟁이다"며 "길잡이 푸른 늑대가 되어 한국인으로 사유하며 시조라는 형식으로 생각을 풀어내는 세계로 안내하는 몫, 그것이 지구별에서 제게 주어진 소명이거니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해 수정초교 3~4반 학생들은 숱한 시조짓기 백일장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아이들은 '청담백일장', '한국시조문학관 백일장', '대구시조 주최 전국시조응모', '이주홍문학공모전' 등에서 입상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쓴 시조는 그야말로 친근하고, 정겹고, 귀엽기만 하다. 시조 한 편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시조시인 신애리 교사가 2017년 진주 수정초교 3학년 4반 아이들이 쓴 시조를 한데 묶어 <괴짜 선생님과 개구쟁이들>을 펴냈다. 신 교사는 해마다 아이들의 시조짓기를 지도하고 시조집을 내고 있으며, 이번까지 모두 11권째다.
 시조시인 신애리 교사가 2017년 진주 수정초교 3학년 4반 아이들이 쓴 시조를 한데 묶어 <괴짜 선생님과 개구쟁이들>을 펴냈다. 신 교사는 해마다 아이들의 시조짓기를 지도하고 시조집을 내고 있으며, 이번까지 모두 11권째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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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콧수염에 새하얀 머리카락
할아버지 얼굴이 오늘도 보고 싶어
신나게 웃어주시는 우리 집 방귀대장
- 김대희 작 <할아버지>.

둥글둥글 얼굴에 쭈글쭈글 주름들
구부정한 허리로 텃밭으로 가신다
허허허 웃음까지도 모두 나눠 주신다
- 김태희 작 <할머니>.

외로울 때 생각난다 수원 사는 도훈이
전학 올 때 바빠서 인사도 못했는데
추석에 외할머니댁 가면 다시 볼 수 있을까?
- 이윤석 작 <친구>.

아이들의 시조에는 가족이나 친구가 자주 소재로 등장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시조의 '초장'과 '중장'에는 평이하게 읊조리다 마지막 '종장'에서 긴장감을 한껏 살리면서 시조의 감칠맛을 살려서 쓰고 있다.

'외로울 때'가 있다고 한 아이는 친구를 떠올리면서 '종장'에 모두가 풍성한 '추석'과 '외할머니댁'을 끌어와 더 친근감을 준다.

학교 간다 따라와! 학용품창고 책가방
으악! 너무 많아 토하는 비만가방
홀쭉한 저체중가방 잘 지내자 친구야
- 강지우 작 <가방>.

밤마다 엄마 몰래 내 방에서 탁탁탁
비밀번호 나와라 내 길을 막지마라
꾹꾹꾹 비밀 풀었다 잠 날리고 새벽까지
- 강주연 작 <핸드폰>.

동그란 친구 하나 반짝반짝 빛나네
파란색 유리 너머로 우리 쪽만 쳐다 봐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무슨 일로 화났니?
- 김재현 작 <거울>.

경남시조시인협회 김진희 회장(창원 봉강초교 교장)은 "경제적 급성장과 물질의 풍요는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지만 무언가 잃은 듯, 쫓기듯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정신을 가다듬고 내 속에 잠든 마음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줄 글에서 큰 힘을 얻기도 한다. 3장6구로 된 시조는 민족의 얼과 정신이며 우리 전통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먼 훗날 친구들의 작품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꿈과 소망,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 보는 재미를 느끼고 함께 벗할 수 있는 좋은 책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정정애 학부모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절대 살 수 없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아이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책, 따뜻하고 완성도 높은 아이들의 시조집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했다.



태그:#진주 수정초교, #시조, #신애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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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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