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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설레는 삶은 젊고 행복한 삶이다.

시골살이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정원을 가꾸고 다듬는 것이다. 멋지고 좋은 나무를 데려와 운치 가득하고 여유로운 집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나뭇값보다 옮기고 심는 비용이 더 들어 데려오지 못하였다.

내 차로 옮길 수 있는 나무를 데려오다 보니 정원의 나무들은 거의 3년생 전후의 나무들로 가득하다. 이 나무가 지금은 앙상하여 볼품이 없지만 내년에 또 내후년의 모습을 그려본다. 노년에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 아쉽다고 하는데 나는 내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꽃과 나무에 대해 나는 무지했다. 빨간 꽃은 장미, 노란 꽃은 개나리, 흰 꽃은 백합, 봄에 핀 꽃은 벚꽃, 가을에 핀 꽃은 국화, 산에는 소나무, 마을에는 느티나무 정도였다.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책과 유튜브를 통해 꽃과 나무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이전엔 전혀 이름도 몰랐던 꽃과 나무의 이름을 하나둘 익혀가고 있다. 매발톱, 벌개미취, 분홍상사화, 초롱꽃, 패랭이, 끈끈이대나물, 서부해당화, 미산딸나무, 병꽃나무, 칠자화 등등은 정원 가꾸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알게 된 꽃과 나무들이다. 이제는 작약과 목단을 구별할 뿐만 아니라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도 구별할 줄 안다. 길을 가다가도 마음에 드는 꽃과 나무가 있으면 바로 물어보고 찾아본다. 알면 관심이 가고, 관심이 가면 사랑이 싹튼다.

정원을 가꾸고 다듬는 일은 처음이라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해 거듭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무지로 몸이 고생하고 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힘든 것이 나무를 옮겨 심는 일이다. 심고 싶은 나무를 심어 놓았지만, 다른 나무와 거리, 햇볕과 배수, 땅의 상태를 알지 못해 나무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 이제 꽃과 나무를 데려올 때 먼저 그 특성에 대해 알아본다.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지, 햇볕과 물은 어느 정도 필요한지 등등을 확인하고 정원 어디에 심을지를 고민한 후 데려온다. 그리고 다른 나무와의 거리뿐만 아니라 어울림도 생각한다. 굳이 공자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알아가는 기쁨의 맛도 톡톡히 누리고 있다. 배우고 익히고 알아가니 젊어지고 행복해진다.

석축에는 회양목과 철쭉 그리고 꽃잔디가 가득하다. 2년여 동안 주말주택으로 지내오다 보니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먼저 회양목부터 가지치기하였다. 처음에는 아까워 가위질이 조심스러웠다. 이사하면 책을 처음 정리할 때 내 모습과 겹친다. 부끄러움이 다가왔다. 먼지만 쌓여 있는, 지적 허영으로 꽂혀 있는 책은 과감히 버렸다. 가지를 자르다 보니 나무에 문제가 있는 부분이 보였다.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행복

햇빛이 잘 닿지 않고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부분은 나무가 병들어 있었다. 아랫부분을, 안쪽을 과감히 잘랐다. 나무가 시원해 보이고 생동감을 되찾은 듯하다. 꽃잔디와 철쭉도 엉망이다. 이들은 꽃을 본 뒤 솎아내고 가지치기할 생각이다. 가지치기는 나무에 따라 언제, 어느 부분을 잘라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무가 잘 살고 멋있어진다. 이제 나의 몸과 정신도 점점 작아지고 있는데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 사람들과의 관계도 가지치기해야 한다. 그래야 내 삶도 건강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라고 했는데 시골살이하면서 멸망하는 짐승을 면했으니, 이도 족하다.
  
회양목을 가지치기한 후 모습. 꽃잔디와 철쭉은 꽃이 진 뒤 할 생각임.
▲ 석축 정원 회양목을 가지치기한 후 모습. 꽃잔디와 철쭉은 꽃이 진 뒤 할 생각임.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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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현관을 나서면 맺혀 있는 꽃망울을 보고, '내일이 되면 꽃을 피워내겠네' 하면서 내일을 설레며 기다린다. 그리고 해가 정원으로 완전히 들어오면 또 나가 정원을 둘러본다. 아침하고 다르다. 맺혀 있던 꽃망울은 터뜨려 꽃을 피워냈다.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홀로 감탄하는 행복을 잠시 누린다. 덤으로 맑고 깨끗한 공기의 맛을, 여유롭게 흐르는 구름을, 살랑이는 바람결을, 앞산 나뭇가지의 새순에서 희망을 오감으로 느낀다. 살아 있음이, 행복함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참 좋다.
  
지난해 데려왔을 때는 꽃망울 몇 개밖에 없었는데 올해 이렇게 많이 꽃망울이 맺혔음. 내년이 기다리짐.
▲ 서부해당화 지난해 데려왔을 때는 꽃망울 몇 개밖에 없었는데 올해 이렇게 많이 꽃망울이 맺혔음. 내년이 기다리짐.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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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길목에 몇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미산딸나무, 서부해당화, 라일락 2그루, 수국 3그루, 제니목련이다. 봄과 여름에는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 가을에는 예쁜 단풍으로, 겨울에는 눈꽃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나보다 한 걸음 앞서 맞이할 것이다. 지금은 볼품이 없지만 시간이 흐른 뒤 나무의 풍성한 모습을, 찾아오는 사람의 표정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내년이 되면 꽃과 나무가 풍성해져 찾아오는 이를 기쁘게 맞이할 것임.
▲ 찾아오는 이들을 기쁘게 맞이할 꽃과 나무  내년이 되면 꽃과 나무가 풍성해져 찾아오는 이를 기쁘게 맞이할 것임.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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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가 이렇게 마냥 행복만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행복함에는 그에 대한 비용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 나무를 심기 위해 잔디를 걷어내고 땅을 판다. 가지치기하려 이곳저곳을 오르내려야 한다.

내가 정리해야 할 주변이 의외로 넓다. 안 썼던 근육을 사용하다 보니 팔과 다리가 결리고 쑤신다. 곁에 있는 나무를 정리하다 보면 가시에 찔리기도 긁기도 한다. 일을 마치고 나면 허리와 무릎이 뻐근하고 결여 바로 걸어지지 않는다. 곁에서 아내가 이 모습을 보고 '할배 다 되었다'라고 한다.

수도가 고장났다

며칠 전에는 마을상수도가 고장났다. 수리는 하루 만에 끝났다. 하지만 수도관에 공기가 차 물이 하루 동안 나오지 않았고, 하루 뒤 물은 나오지만 뿌옇게 나와 이 물을 빼내기 위해 모두 수도를 틀었다. 그러다 보니 물이 떨어지고, 모터에 과부하가 걸려 차단되었다. 다시 공기가 차고, 뿌연 물을 빼기가 이틀이나 반복되었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씻기 위해 자동차로 왕복 2시간이나 걸리는 목욕탕에 가 몸을 씻었다. 일주일 동안 뿌연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았다. 화장실 물은 그런대로 쓸 수 있지만 설거지하고 밥 짓는 물은 매일 아랫마을에서 길어 왔다. 어릴 때 샘이 있는 먼 곳까지 가 양동이에 물 길어 오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시 한번 어머니의 힘든 삶을 생각한다.  
 
마을상수도 수중 펌트와 모터가 고장나 교체함.
▲ 마을상수도 마을상수도 수중 펌트와 모터가 고장나 교체함.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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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잠금이 고장나 새로 설치하려 하니 이곳은 오지라서 출장비만 10만 원이라 한다. 어찌하겠는가? 집 앞에 있는 두릅나무, 엄나무의 새순을, 머위 잎을 나물로 먹고 있으니 스스로 위로한다.

이곳은 오지라도 다행히 행정명이 시(市)에 속해 있어 택배는 들어온다. 때에 따라 하루 늦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택배가 올 때쯤 기다리고 있다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면서 생수 한 병으로 고마움을 대신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몸이 조금 고되고, 가끔 귀찮은 일들로 몸이 조금 불편해도, 생활의 불편함이 때때로 있어도 이 모두가 시골살이의 비용이다. 젊고 행복해지는데 이까지 비용쯤이야. 

태그:#시골살이행복, #시골살이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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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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