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31 18:06최종 업데이트 24.02.0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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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지난번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https://omn.kr/246ku)'에 이어 다시 연재 요청을 받고, 어떤 주제의 글을 쓸지 고민했다. 그런데 며칠 만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2010년,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같은 제목의 영화에서 연상된 것이다. 영화를 보긴 봤는데, 사실 내게 그다지 인상에 남는 영화는 아니었다. 다만 내가 쓰고 싶은 글의 방향을 딱 짚어주는 제목이었다.

근대 이후 세상은 분석력과 전문성이 발전하면서 한 사람의 인생도 '전체'로 보기보다는 필요나 관점에 따라 잘게 나눠서 보려는 습성이 생겼다. 경제적 인간, 정치적 인간, 애정의 인간... 그러나 갈수록 더욱 분명하 게 깨닫는 사실은 사람은 전인적, 총체적, 복합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은 사람의 전 존재와 모든 욕구를 다 포괄하기에 가장 좋은 제목이다.


먼저, '먹고'는 사람이 살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먹고 살아가는 생존의 기본 틀을 다 포함한다. '먹고사니즘'은 함부로 폄하해도 좋은 말초적인 욕구가 절대 아니다. 건강한 먹고사니즘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다. 경제의 본질과 문제, 부자와 가난한 자, 직업, 자아 성취,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담길 것이다.

'기도하고'는 그저 신을 향한 기도(종교 생활)만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현실을 뛰어넘어 삶의 의미와 근원에 대한 추구를 말한다. 대개 철학과 종교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목사지만 이 글에서는 기독교 신앙에 한정하지 않을 것이다. 삶(인생)의 의미와 목적, 고난의 이유, 신앙을 갖게 되는 계기, 질병과 죽음, 철학과 사상, 인류의 스승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랑하라'는 말 그대로 사랑 이야기다. 사람 살아가는 데 사랑 빼면 정말 시체다. 오죽하면 대중가요 주제 중 가장 많은 게 사랑 아닌가? 대개 '사랑'이라면 부모, 자식 간 사랑과 연인과 부부 등 이성 간 사랑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나눌 사랑 이야기는 개인적 사랑을 넘어선 모든 타자와의 관계, 곧 이웃과 사회를 향한 '섬김과 참여'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사실 사랑이야말로 인생의 최종 목표가 아닐까? 사랑의 의미, 가정과 결혼, 성 이야기, 남자와 여자, 그리고 성소수자, 세대 간 만남 이야기에 정치도 넣고 싶다. 정치의 본래 자리는 군림이 아니라 섬김과 책임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대학전공은 철학이었다. 그러나 세 주제는 사실상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서로서로 연결돼 있다. 결국 내가 이 꼭지를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것은 세상살이의 모든 주제다. 나는 경제학자와 경영자만 경제를 이야기하고, 철학자만 인생을 논하고, 종교인만 하늘을 이야기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느 분야든 전문가는 있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주제나 도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누가 대신해 주거나 한 사람이 전부 가르쳐줄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특정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이야기는 전문가들만 알 수 있는 어려운 이론이나 전문 식견이 아니라 누구나 느끼고, 일상에서 겪어온 이야기들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때로는 평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주제를 써보기도, 또 때로는 가장 중요한 현안을 다루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론사 전문기자가 아니니 단순한 정보나 사실 전달보다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와 내 나름의 소회를 적어보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느낀 불편함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기왕 첫 연재 글이니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그 영화 얘기를 조금 더 해 보자. 이 영화는 원래 미국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이미 본 분이 많겠지만,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 알고 싶은가?

"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남편, 맨해튼의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언젠가부터 이게 정말 자신이 원했던 삶인지 의문이 생긴 서른한 살의 저널리스트 리즈. 결국 진짜 자신을 되찾고 싶어진 그녀는 용기를 내어 정해진 인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보기로 결심한다. 일, 가족, 사랑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무작정 일 년 간의 긴 여행을 떠난 리즈. 이탈리아에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하는 동안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제 인생도 사랑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용기가 필요한 당신을 위한 기적 같은 감동 실화! 지금, 당신과 함께 떠납니다."

이 영화에 대한 소개 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제는 이와 비슷한 여행을 꿈꿀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런 여행을 통해 몰랐던 자아를 발견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 가족, 사랑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무작정 일 년 동안 여행을 떠나, '이탈리아에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성공한 전문가인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선택할 수 있는 도전일지 모르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 제3세계 서민에게 그것은 아주 특별하고 선택받은 여행이다. 잊지 말자. 우리 국민들이 이와 비슷한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 이미 전 세계 상위 10%에 해당하는 특별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맙고, 때론 미안한 줄 알아야 한다.

그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리즈가 신나게 먹고, 뜨겁게 기도하고, 자유롭게 사랑하다가 만난 사람들은 대개 리즈와 다르게 산다. 그들은 외국의 별미를 맛보기 위해 찾아다니기보다 있는 대로 먹고, 정제된 곳에서 명상과 수행을 하기보다는 삶이 힘들어 비명처럼 기도하며,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결혼생활이 싫어 쿨하게 이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인생을 순례나 여행처럼 여길 수 있는 리즈와 달리, 그녀가 여행하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녀가 느끼는 바와는 다르게 살아갈 것이다. 나그네로서 설정된 인위적 여행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은 나와 다른 환경에 놓여있다. 그게 내게 이 영화에 몰입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주었나보다.

평범한 일상 속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이야기
 

거대감옥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 구교형

 
이런 정서를 느낀 여행 기회가 내게도 있었다. 2010년, 지금 전쟁이 한창인 팔레스타인 땅의 현실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몇몇 평화운동가와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우리 역시 10여 일 정도 머문 여행객이었지만, 흔한 여행과 목적이 달랐기에 또 다른 이방인으로서 여행자들을 관찰할 수 있는 경험이기도 했다.

지금 같은 전쟁 상황은 아니지만, 그곳 사람들은 항상 긴장과 갈등, 물리적 위협 앞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권을 갈라놓은 분리 장벽도 관광객들에게는 기념사진 한 장 멋지게 남길 수 있는 명소였고, 그들의 생존공간을 야금야금 침범해 들어가는 유대인 정착촌도 이방인에게는 다른 곳보다 훨씬 이색적이고 고급스러운 동네로 느껴졌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뤄보겠다.

이처럼 똑같은 시간, 똑같은 공간도 누가 어떤 마음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부끄럽지만 나 같은 종교인이야말로 모두가 헉헉대며 치열하게 싸우는 생활 현장, 생존 공간을 벗어나 그저 차원 다른 세상에서 품위 있는 기도와 관조적 생활에 빠지기 쉽다.

물론 때로는 쳇바퀴 도는 현실을 벗어나 특별한 공간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작심하고 일상을 떠날 때도 있어야 한다. 나도 같은 길, 같은 골목을 가도 택배기사 신분으로 배송차로 갈 때와 아는 지인과 함께 밥 먹으러 갈 때 느낌이 천지 차이로 다르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의 삶은 평범한 일상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내가 쓰려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자아를 찾는 자리'는 리즈처럼 평소 자기와 다른 특별한 어느 곳(이탈리아, 인도, 발리)이 아니라, 내가 허겁지겁 밥 먹고, 애타게 부르짖고, 밀당 속에 사랑하며 지지고 볶는 일상의 바로 그 자리다. 거기서 우리는 얼마든지 사람 살아가는 의미도, 재미도, 애환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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