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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군 미시령 터널 입구 사면에서 마른 가지를 뜯어 먹고 있는 산양의 모습이 보인다.
 강원도 인제군 미시령 터널 입구 사면에서 마른 가지를 뜯어 먹고 있는 산양의 모습이 보인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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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산속. 깊은숨을 몰아쉬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산양을 만나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야생의 공간에서 마주하는 동물이라니 얼마나 신비한 경험인가. 그 공간에 산양과 나, 둘만이 존재하는 기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야생동물을 담당하게 된 신입 활동가가 처음 산양을 만난 곳은 다름 아닌 미시령 터널 입구였다. 가까이 서 있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자동차가 빠르게 지나가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낙석방지책 너머의 사면에서 마른 가지를 하염없이 오물거리고 있는 것은 분명 산양이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만날 수 있다는 산양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야생과 인공의 경계에서 위태롭고 기묘하게 이뤄졌다.
 
강원도 인제군 미시령 터널 입구 사면에 산양 4개체가 위태롭게 서있다.
 강원도 인제군 미시령 터널 입구 사면에 산양 4개체가 위태롭게 서있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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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로 인한 폭설, 인간과 산양을 가로막다

2월 22일부터 23일까지 경상북도 울진군에는 최대 70cm의 폭설이 내렸다. 200여 가구가 정전되고 70대 노인이 헬기로 구조되는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산양 또한 위급할 것이라 직감한 녹색연합은 3월 한 달간 강원도 삼척시와 경상북도 울진군 권역에 퍼져있는 산양의 서식지를 긴급 모니터링했다.

산양은 겨울철 먹이를 찾아 저지대로 이동한다. 짧은 다리를 가진 산양은 눈이 조금만 쌓여도 이동에 제약이 생긴다. 먹이활동을 하다 눈 속에 고립되기 십상이다. 어리거나 나이가 많은 산양은 더욱 쉽게 지쳐 계곡 인근에서 탈진하거나 폐사한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가 잦다. 이번 겨울 모니터링 중 산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죽은 산양을 발견했다. 그 만나기 어렵다는 산양을 보아도 더 이상 놀랍지 않을 지경이었다.
 
지난달 13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계곡 인근에서 폐사한 상태로 발견된 어린 산양을 살피는 모습. 1년생 추정.
 지난달 13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계곡 인근에서 폐사한 상태로 발견된 어린 산양을 살피는 모습. 1년생 추정.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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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울진·삼척 산양

올겨울 산양의 떼죽음으로 주목받은 지역은 설악산 일대였다. 그렇다면 녹색연합은 왜 울진·삼척 지역의 산양에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이자,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은 환경부와 문화재청이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 내에서 폐사하거나 구조가 필요한 산양이 발견될 경우 환경부 산하인 국립공원공단에서 구조 및 폐사체 수거를 진행한다. 강원도 북부의 경우 양구에 있는 산양·사향노루증식복원센터에서 구조 및 폐사체 수거를 진행하고 있다.

설악산 권역만큼이나 산양이 밀집해 서식하고 있는 울진·삼척 지역에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긴급 상황 발생 시 구조 및 폐사체 수거를 전담할 기관이 부재하다. 지자체, 환경부, 문화재청의 긴밀한 협조에 따라 구조와 폐사 원인 파악 등 정밀 모니터링과 치료를 위한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달 31일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계곡 인근에서 발견된 산양 폐사체. 1년생 추정.
 지난달 31일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계곡 인근에서 발견된 산양 폐사체. 1년생 추정.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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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치료시설과 체계가 없어 집단 폐사했던 2010년의 문제점이 해결되지 못한 채 울진의 산양은 똑같은 위기 상황을 맞닥뜨렸다. 관련 기관의 협력을 통한 야생동물 보호 시스템 구축은 비단 울진·삼척뿐 아니라 설악산과 강원권역 및 전국의 산양 서식지 보호와 관리에서 시급히 해결돼야 하는 문제임이 이번 겨울, 산양의 죽음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경상북도 울진군은 산양 100개체 이상이 살아가고 있는 아무르 산양의 세계적 최남단 집단 서식지로서 국내외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곳이다. 생태·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지역이지만 관리·감독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산양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사이 울진·삼척 산양은 폭설로, 산불로, 도로와 송전탑 건설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3월 한 달간 울진·삼척 지역에서 녹색연합이 진행한 모니터링을 통해 발견된 폐사한 산양은 총 12개체다. 2010년 울진 지역 70년 만의 폭설로 인해 25개체가 폐사한 이후 최대 수치다. 하지만 이는 녹색연합 모니터링을 통해서만 발견된 개체수다. 주민, 산양보호협회 등을 통해 확인된 폐사체를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울진·삼척 산양의 죽음에 우리가 더 주목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2010년 4월 9일 탈진한 산양 응급치료하는 모습.
 2010년 4월 9일 탈진한 산양 응급치료하는 모습.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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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과 그들의 서식지를 보전하는 활동을 펼치는 활동가로서 이토록 쉽게 산양을 만난 것은 분명 놀랍고 진귀한 경험이다. 그러나 올해와 같이 수십 번 산양과 마주하는 경험은 다시는 하지 않고 싶다. 우리가 만남을 고대했던 존재가 지친 몸으로 인간의 공간까지 밀려난 산양은 아닐 테니 말이다.

더는 산양을 만나지 않아도 좋다. 대형산불로 인해 집을 잃은 산양이 없기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로 인해 갈 곳 잃은 산양이 없기를, 폭설로 인해 발이 묶이고 먹이를 찾지 못한 산양이 없기를, 뿔도 채 나지 않은 어린 산양을 물 위에 떠오른 차가운 시신으로 마주하는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태그:#녹색연합, #산양, #폭설, #울진, #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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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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