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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예술인의 그림이 과천거리미술관에 걸려있다.
 2024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예술인의 그림이 과천거리미술관에 걸려있다.
ⓒ 배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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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을 그리고 싶어요."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에 내려 10번, 11번 출구로 향하면 길게 뻗은 터널을 마주한다. 터널 초입, 여러 문화예술 소식을 훑어보다 문득 예술 작품을 만난다. 고개를 들어보면 '과천거리미술관'. 알록달록 개성 가득한 그림에 빠르게 내딛던 걸음이 톡, 제자리에 멈추어 선다.

올해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맞아 과천시장애인복지관은 2024 장애주간행사 '일상의 기적을 잇다'를 4월 15일부터 19일까지 진행했다. 유튜버 박위 위라클 토크콘서트부터 과천노래자랑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졌는데, '장애예술인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는 4월 한 달 내내 과천거리미술관 자리를 지킨다.

총 6명 작가의 그림으로 이뤄져 있는데, 적게는 5점부터 많게는 11점까지 다채로운 그림이 관객을 맞이한다. 독특한 작품의 주인공 백지선(52), 유재록(36) 작가를 19일 만났다. 장애인의 날 행사로 바쁜 와중이었으나 시종일관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왼쪽부터 백지선(52세), 유재록(36세). 문화예술직무를 수행하는 과천시장애인복지관 직업적응훈련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백지선(52세), 유재록(36세). 문화예술직무를 수행하는 과천시장애인복지관 직업적응훈련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 배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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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명이 '써니'인가.

백지선 : "제 이름이 지선인데 뒷글자를 따서, 그리고 제 작품이 누군가에게 빛이 되길 바라며 써니라 했어요."

백지선 작가는 장애 정도가 심한 지체장애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불현듯 숨이 가빠 검사를 받아보니 심장판막증이었다. 혈액의 방향을 조절하는 판에 문제가 생긴 것인데, 몸 곳곳에 산소가 적절히 공급되지 않아 마비가 왔다. 이후 수술을 했고 재활 운동에도 꾸준히 임하고 있다고. 과천시장애인복지관과의 인연은 2020년부터 이어졌다.

- 필명이 '시집이'... 어떤 의미죠?
유재록 : "시를 좋아해요. 이전에 시집을 내기도 했어요."

머리카락을 곱게 땋은 채 단어 하나하나 정성 들여 말하는 유재록 작가. 그는 발달장애인으로 2019년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돼 '우리들의 생각'이라는 시집에 시인으로 참여했다. 과천에서 태어나 쭉 살아온 그는 과천시장애인복지관과 2011년 개관부터 함께해 인연을 쌓았다.   
 
왼쪽부터 '같은 곳을 바라보다, 백지선', '회전목마, 유재록'
 왼쪽부터 '같은 곳을 바라보다, 백지선', '회전목마, 유재록'
ⓒ 배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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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은 작가님의 그림을 통해 전시 관람 기회를 얻었어요. 작가님은 그림을 통해 무엇을 얻었나요?
백지선 : "손에 힘이 잘 안 들어가는데 그림을 그리니까 손에 힘이 생겼어요. 또 자신감도 높아졌고요. 동시에 일자리도... (웃음)"

- 전시장에 있는 작가 소개를 보면 '행복'에 대한 언급이 많아요. 그림을 보는 저도 괜스레 마음에 무언가 피어나는 것 같았는데요, 작가님의 '행복'에 대해 듣고 싶어요.
유재록 : "그림을 그릴 땐 마음이 평화로워요. 이음 홍보단 동료들과 그림을 그릴 때 무척 행복해요. 많은 분이 제 그림을 통해 행복을 느끼면 좋겠어요."  
 
장애예술인 이음홍보단 구성원이다. 자화상과 필명을 기재했다.
 장애예술인 이음홍보단 구성원이다. 자화상과 필명을 기재했다.
ⓒ 과천시장애인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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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홍보단은 과천시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인복지일자리 사업 '문화예술직무' 참가자 공동체를 지칭한다. 과천시장애인복지관은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장애인일자리사업 위탁운영기관으로 사업을 수행 중이라고. 장애인일자리사업은 장애인복지법 제21조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13조 2에 따라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장애 유형 별 다양한 일자리를 개발·제공, 직업 경험을 지원하는 사업이며, 미취업 장애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한다.

과천시장애인복지관은 행정 보조, 환경 미화 등 기존 일자리에 2024년 문화예술직무를 신규 배치했다. 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며, 단순 취미가 아닌 '직무'인 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 및 경력이 있는 사람을 우선 선발했다.

문화예술직무로 회화, 디지털드로잉, 작문 분야가 있으며 전문 강사 네 명이 직무 개발을 지도한다. 디지털드로잉에서 장애예술인이 그린 용 그림을 2024 과천시장애인복지관 소식지 표지, 볼펜 및 책갈피 굿즈에 사용하기도 하는 등 작품 활용 방안도 지속적으로 모색 중이다. 

- 직무라면 급여가 있을 텐데요.
백지선 : "달에 56시간 일해요. 급여는 최저 시급으로 산출돼 월급으로 약 55만 원 받고요. 9시부터 4시까지 복지관에 있는데 오전에는 문화예술직무로 일해요. 그림만 봤을 때 2주에 한 작품 정도가 평균인데 이번 전시 준비하면서는... (웃음) 조금 더 그렸어요."

- 오전엔 문화예술직무, 그럼 오후에는요?
백지선 : "오후엔 복지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재활 운동도 해요. 작업장이라고 해서 부업도 하고요. 바쁜 하루를 보내다 집에 들어가면 저만의 방법으로 휴식을 취합니다. 제가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피아노와 우쿨렐레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쉴 때도 즐겨요."

그가 예술 활동을 공개한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 아니었다. 작년에 음악 관련 공연을 했다고. 샌드아트 강사 자격증도 땄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유재록 : "저도 오후엔 비슷하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요, 자조 모임도 해요. 동아리 같은 건데, '푸른청년초록과천'이라는 팀과 이따가 화분 나눔을 해요."

백지선 : "오늘이라면, 저는 1시 30분에 노래자랑 출전해요!"

오후 행사에 참여한다며 쾌활한 목소리가 공중에 퍼졌다. 노래자랑에 출전한다는 말에 문득 그의 차림이 눈에 띄었다. 흰 블라우스에 검정 조끼, 포인트 액세사리로 차분하면서도 멋스러운 느낌. 과천시장애인복지관은 복지관 내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시민과의 활동을 통해 사회와 관계 맺는 활동도 지속해서 만드는 중이라고 전했다. 장애인들이 보통의 삶을 살 수 있게 돕는다는 취지다.
 
과천시장애인복지관 1층 나무그늘 카페에서 백지선, 유재록 작가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과천시장애인복지관 1층 나무그늘 카페에서 백지선, 유재록 작가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배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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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세요?
백지선 : "바다요. 최근에 가족 여행으로 정동진을 다녀왔어요. 바다가 정말 좋아요. 그런데 자주 갈 수 없는 건 아쉬워요. 이동이 쉽지 않아서..."

장애인콜택시는 각 지자체에서 운영한다. 지역 간 이동이 일부 가능하며 운영의 범위는 시도별로 상이하다. 2022년 보건복지부 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과천시 장애인 수는 2246명이다. 인근 지역 수원시 4만 2393명인 것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과천시장애인복지관 관계자는 "인구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적어 서비스 진입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복지관 서비스 자체에는 만족감을 표했던 백지선 작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어 자신의 그림이 걸린 전시장에 한 번밖에 못 갔다고 아쉬워했다.

유재록 :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고 싶어요. 서로 존중하고 함께 하는 세상이요."

재록 작가는 인터뷰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곱씹어 말했다. 그동안 모아온 행복 조각을 보물 상자에서 꺼내듯이. 그가 보여주는 행복엔 혼자란 없었다. '함께', '같이'의 행복을 읊조렸다.

"나뭇잎이 하나씩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 땅바닥은 나뭇잎의 운명이다 / 그 사람을 보면 나뭇잎이 생각난다 / 저 멀리 있는 운명이 나는 나뭇잎이라 생각한다 / 나뭇잎이 내 마음 바닥으로 떨어진다" - 유재록, 운명  '우리들의 생각'

그에겐 떨어지는 나뭇잎마저 함께해야 할 대상이 된다. 어쩌면 나뭇잎은 떨어지기 전까지 모르지 않았을까? 자신이 떨어질 운명이라는 것을. 작가의 나뭇잎은 태어나 처음 곤두박질친다. 언제나 붙어있을 줄 알았던 나무에서 낯선 바닥으로. 그러나 작가의 나뭇잎은 위험하지 않다. 날아가지 않도록 받쳐주고 품어주는, 존중이 밴 마음 바닥이었기에.

태그:#장애인, #장애인의날, #장애인복지일자리, #문화예술직무, #장애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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