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의 한 장면

MBC 의 한 장면 ⓒ MBC

 
지난 16일로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이했다. 온 국민이 세월호가 침몰하는 걸 생중계로 봤기 때문이었을까? 세월호 참사는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한국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참사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고들 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한국 사회는 달라진 게 없을뿐더러 참사 원인 규명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세월호 10주기인 16일 MBC < PD수첩 > '세월호 10년의 기억, 밝혀진 것과 묻힌 것' 편이 방송되었다. 세월호 유가족의 목소리로 시작한 이날 방송에서는 지난 10년 동안의 결과와 앞으로의 과제 등이 담겼다. 연출 이야기가 궁금해 김보람 PD를 지난 17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세월호 10주기 방송은 다른 아이템과 느낌이 달랐을 것 같은데 방송 끝낸 소회가 어때요?
"2014년 4월 16일에는 제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을 때거든요. 그때도 비극적인 참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두 아이의 엄마가 돼서 다시 보니 마음이 더 힘들더라고요. 아이를 키워보면 한 생명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모든 감각으로 느끼게 되어요. 갓난아기의 보드라운 손부터 태어났을 때 울음소리 같은, 아이의 모든 순간이 다 기억이 나는데 그런 소중한 아이가 너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없어진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이 아파서 취재 과정에서 많이 울었어요. 물론 저보다는 당연히 유가족분들이 훨씬 힘드시겠죠.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까 싶더라고요."

- 이미 세월호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많아서 어떻게 차별화할지도 고민이었을 것 같아요.
"그 지점이 가장 어려웠어요. 사실 10년 동안 해온 이야기가 많잖아요. PD로서는 뭐라도 다르게 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거든요. 그래도 10주기를 맞아 우리가 꼭 봐야 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고요. 방송 제목이 '밝혀진 것과 묻힌 것'이었죠. 일부에서는 '지겹다, 듣기 싫다, 10년이나 그거 붙잡고 있는데 달라진 게 없잖아, 밝혀진 게 없잖아'라는 말들도 있었는데 정말로 밝혀진 게 없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밝히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방송이 10년을 맞아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제작했습니다."

- PD님은 2014년 4월 16일이 기억나나요?
"저도 모든 분한테 인터뷰 때 이 얘기를 똑같이 물어봤거든요. 근데 모두가 그날을 다 또렷하게 기억하더라고요.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세월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에게도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가 있죠. 그때는 여의도 MBC 시절이었고, 저는 <불만제로>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사무실에서 촬영 준비하고 있는데 배가 가라앉았다는 뉴스가 뜨는 거예요. '전원 구조'라고 뜨길래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갑자기 전원 구조 아니라면서 사무실이 난리가 났어요. 저희 팀 옆자리가 < PD수첩 > 자리였거든요. 갑자기 선배 PD들이 진도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고 배를 알아본다고 우왕좌왕 뛰어가던 생각이 나요."

- 프롤로그에서 유가족의 목소리를 담으셨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가 세월호를 생각했을 때 가장 크게 다가오는 정서는 슬픔이라고 생각했어요. 300여 명의 생명이 허망하게 떠나버린 게 너무나 큰 슬픔인데, 그 슬픔을 가장 와닿게 말할 수 있는 건 유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먼저 유가족의 이야기부터 들었습니다. 유가족 섭외는 좀 민망한 부분이 있어요. 평소에는 관심도 안 갖고 10년 동안 뭐 하다가 연락하냐고 생각하실까 봐 죄송함이 컸죠. 정말 미안해하며 연락을 드렸는데 오히려 다들 고맙다고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잘 듣고 성의 있게 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됐고요."

- 유가족은 2014년 4월 16일에 멈춰계신 것 같았습니다.
"고 장준형 군 아버님인 장훈 선생님과 단원고 기억 교실에 갔어요. 1년에 몇 번씩 가시기는 하는데, 기억 교실 가는 게 제일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20대 후반이 되었어야 할 아이가 그 자리에 박제된 느낌이라서, 그걸 보는 게 가장 슬픈 일이라고 얘기하셨어요."

과학적 근거 없었던 외력 충돌설 
 
  김보람 PD

김보람 PD ⓒ 이영광

 
-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개조, 과적에 평형수까지 뺀 결과라고 보아야 할까요?
"단일한 원인은 아니에요. 사회에 누적된 잘못된 관행들이 아주 많이 중첩됐을 때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걸 우리가 목격한 거죠. 과승, 과적도 했고 심지어 고박도 안 했고 심지어 평형수도 빠졌고 수밀문도 안 닫았고 하필이면 선장도 임시 선장이었고요. 근데 우리가 그 모든 최악의 상황을 감안해가며 안전을 생각하며 살 수 없는 거잖아요. 애초에 그 누적된 나쁜 관행들이 없었어야 했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죠."

- 외력 충돌설은 왜 나왔던 건가요?
"많은 가설이 나왔잖아요. 인양되기 전에는 정말 훨씬 더 많은, 음모에 가까운 가설들이 나왔고. 인양되고 배의 실체를 보고서도, 배의 일부분에 외부적 충격이 가해진 부분이 있었다고 본 분들도 일부 있었고요. 진상 규명이라는 게 어쨌든 조금의 억울함도 없어야 된다는 측면이 있으니, 초반에는 조사가 진행됐고요. 근데 과학적으로 규명된 사실에 대해 인정하고, 과학적이지 않은 부분을 기각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 혼선이 있었다고 봐요."

- 근데 과학적으로 옳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기각했다면 사회적 비용이 덜 들었을 텐데, 그 점이 아쉬운 것 같아요.
"저희도 참사 10년을 맞아서 그 얘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동안의 조사 기구들이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정말 저희 취재원 말씀처럼, 10년을 낭비한 거 아니거든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말 많은 것들을 밝혀내고 정말 조사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세월호 10년 동안 아무것도 밝혀낸 게 없다'는 인식이 남을 수밖에 없었냐는 거죠. 그게 굉장히 안타까웠고 그 지점에서 침몰 원인에 대한, 확정적인 책임 있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 가장 뼈아픈 일이었다고 생각했어요."

- 승객들에게 퇴선 지시를 안 한 게 참사를 키운 건가요?
"그렇죠. 구조 과정에 관련된 VCR 편집을 하면서도 그랬고, 편집본을 반복해서 볼 때도 저희 연출팀끼리 매번 탄식을 내뱉었어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게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그 한마디로 모든 사람을 못 살릴 지라도,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던 그 중요한 말을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안 했을까요."

- 해경은 혹시라도 잘못되면 책임을 자신들이 뒤집어쓸까 봐 적극적이지 않았던 건가요?
"생각보다 급하게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책임보다 구조가 우선돼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고, 사실은 그 누구라도 그냥 퇴선을 지시해야 했던 것 같은데, 짧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왜 아무도 책임 있는 발언을 하지 않았을지 (취재) 내내 화가 났어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정말 많이 본 사실이었음에도 말이죠."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안전'
 
  김보람 PD

김보람 PD ⓒ 이영광

 
- 또 다른 분노점은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이었던 것 같아요. VIP에게 영상 보여야 하니 보내라고 하잖아요.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슈에 대해 보고하는 건 조직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죠.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그 상황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는 거예요. 정말 긍정적으로 봐서, 이슈 보고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 영상을 달라고는 할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은 어디 있습니까? 승객들이 바다에 있습니까?'라고 침몰 전까지 청와대는 단 한 번도 사람들의 안전을 묻지 않았다는 거죠. 결과적으로 살리기 위해서 영상을 달라고 한 게 아니라 보고하기 위해서만 영상을 달라고 한 거잖아요. 지금 와서 그 교신 기록을 보면 청와대가 현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안일한 인식을 갖고 있었나 보이고요. 사참위 보고서의 문구처럼 '그날, 그곳에 국가는 없었다'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발생했고요."

-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진 게 있나요?
"전문가분들도 매뉴얼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말하셨어요. 그래서 행정안전부, 해양수산부, 해경 등 관련 기관들 다 취재했었고 선박 단속 현장이나 해경 심해 잠수 훈련 이런 데도 갔었고요. 매뉴얼은 정말 많이 변했어요. 세월호 참사에서 배운 교훈이 없지는 않다는 거죠. 근데 매뉴얼이 개선됐다고 참사가 안 일어나는 건 아니거든요. 매뉴얼을 바꾸는 건 가장 쉬운 단계의 일이고 어떻게 실제로 적용할지에 대한 고민은 또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 앞으로 과제는 뭘까요?
"'안전'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기도 하고, 또 추상적이잖아요. 그렇지만 정말 중요하거든요. 우리는 이런 참사 앞에서 그런 흔한 단어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데요. 비극적인 참사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게끔, 안전이라는 단어를 놓치지 않고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취재하며 느낀 점을 말씀해주세요.
"참사 10년을 맞아 부담도 됐지만, 뜻깊은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했고요. 부족하나마 열심히 제작했습니다. 저희 조연출이 참사 희생자와 동갑이고 저희 팀 취재 작가, FD 등 다 20대 중반의 나이여서, 그 친구들이 받아들이는 세월호는 정말 다르더라고요. 저나 기자님은 참사 당시에도 일하던 사람이고, 어른의 시각에서 참사를 봤다면 저희 20대 팀원들에게는 정말로 자기 일이었기에 특히나 진심을 다 하는 게 느껴졌고요.

방송 일 하면서, 세월호 아이템 제작 안 해본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음악 감독님, 편집 감독님도 그렇고. 카메라 감독님들 모두 참사 현장에 가셨던 분들이고, 저나 메인 작가님도 세월호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적이 있고요. 그래서 그 10년의 세월에 대해 저희끼리도 대화를 많이 나눴고, 제작진 모두가 처음 참사를 마주한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 명 한 명이 진심을 다해 제작한 방송이고, 그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특히 유가족과 생존자 분들께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고, 이 방송이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보람 PD수첩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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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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