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5월 3일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민형배 전략기획위원장이 관련 기고를 보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대한 다른 의견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국회 본회의장
 국회 본회의장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이 코앞이다. 언론은 연일 '누구'에 초점을 맞춰 추측 보도를 쏟아 내는 중이다. 제22대 국회 의석의 과반을 훌쩍 넘긴 최대 정당의 원내대표인 만큼 관심이 큰 건 당연하다. 나는 그 관심의 초점이 적절한가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누가 될 것인가' 보다는 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로 초점 이동이 필요하다.
 
"못살겠다 심판하자"
"검찰독재 조기 종식"
"(윤석열 정권에) 당당히 맞서겠다"

각각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의 지난 총선 슬로건이다. 이들 야 3당은 예외 없이 윤석열 검찰독재 심판을 외쳤다. 국민들은 192석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이를 추인했다. 때문에 단독 과반을 훌쩍 넘긴 민주당 원내대표의 역할이 '검찰독재 심판'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혹자는 '민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적극 공감하고 동의한다. 다만, 민생을 챙기려면 먼저 검찰독재부터 제어해야 하는 현실이 놓여 있다. 검찰독재 심판이 민생회복의 전제조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현실을 국민들도 처절하게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헌정사상 유래 없는 거대 야당을 탄생시키지 않았겠는가. 그것도 민주당 단독과반을 만들었다. 때문에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 같은 탄생의 이유에 분명하게 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역할을 한 치 오차 없이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 원내대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검찰이 난장판을 벌이는 오늘의 현실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주장을 거창하게 기고문까지 써가면서 악을 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다 소리치고 있다. 21대 국회 4년을 보내면서 강한 트라우마가 생겨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법무부장관 내정자를 침탈할 당시 민주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명백한 대통령 인사권 침해였고, 인사청문회를 앞둔 국회에 대한 모욕이었음에도 구경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 요구도 이런 저런 이유로 외면했다. 그리고 나서 '대통령 윤석열'이 등장했다.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야당이 되고 말았다. 너무나 분명하게 예견되는 검찰독재를 막기 위해, 동시에 시대의 과제이기도 했던 검찰 수사권 축소 및 박탈 법안 '합의'를 국민의힘이 찢었을 때도 야당인 민주당은 아주 착하게 대응했다. 약속을 지킨다면서 법사위를 자발적으로 넘겨주기까지 했다. 기가 막혔다. 탈당 이후 몸까지 상했다. 저쪽은 탱크를 몰고 돌진하는데 이쪽은 빨간 신호등을 켜는 수준으로 막으려 했던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막지 못했고, 막을 수도 없었고, 오늘 이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검찰이 난장판을 벌이는 오늘의 현실 말이다.

이태원 참사, '바이든 날리면', 두 번에 걸친 제1야당 대표 체포동의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조장, 언론사 표적 탄압, 초부자 감세, 환율 급등, 세수 결손, 경제 폭망, 물가 폭등, 의료대란... 역대 정부의 실정을 다 모아 놓아도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 2년 간의 대한민국 파괴 행위보다는 많지도, 크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정권을 상대해야 하는 민주당 원내대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네 가지만 제시하고자 한다.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필요한 네 가지

첫째, 대여 관계의 기본원리를 '강력한 투쟁'으로 설정해야 한다. 청산의 대상과 타협의 대상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던 게 민주진보 진영의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였다. 이번 총선 야 3당의 공통 슬로건이 사실상 '검찰독재 심판'이었다는 점을 절대 상기하자. 투쟁 없이는 심판도 없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투쟁하고 심판하면 된다. 이 또한 손색없는 민주주의이다. 반성도 사과도 없는 청산의 대상에게 '협치'와 '타협'을 명분으로 끊임없이 반격의 기회를 제공하는 걸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건 심각한 오해다. 그렇게 하라고 정치의 주인인 '민(民)'이 192석을 몰아주었겠는가.

둘째, 협치라는 단어를 머리 속에서 지워야 한다. 추미애 당선자가 너무나도 좋은 개념을 제시했다. "협치가 아니라 민치(民治)여야 한다"는 것이다. 주권자의 뜻, 주권자에게 이로운 것을 맨 앞에 두고 원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제안으로 이해한다. 주권자 중심주의를 실현하는 여러 도구 중 하나로 협치를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협치를 대여 관계의 원리로 삼는 건 192석을 만들어준 총선 결과를 배반하는 행위이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셋째, 끌려 다니지 말고 끌고 다녀야 한다. 속도전이다. 재빨리 기획하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검찰독재의 침탈보다 빨라야 하고, 조선일보 등 수구언론의 여론전에 앞서 일을 마무리 해야 한다. 민주당(과 원내대표는)은 국민의 판단력을 믿어야 한다. 그러니까 검찰독재보다, 조선일보보다, 전가의 보도처럼 언급되는 '중도층'보다 192석을 만들어준 그 국민들을 식은땀 나게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야 끌고 다닐 수 있다. 특히 원내 기득권 세력에 끌려다니는 건 무기력과 위태로움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정치검찰' '조선일보' '당내 기득권', 이들 세력에 끌려다니는 건 금기로 설정해야 한다. 

넷째, 원내대표가 원내(=국회의원)를 대표한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원내에서 민심을 대표'해 행동하는 자리가 원내대표이다. 그러니까 원내대표는 선거 때 만난 거리의 민심을 대표해야 한다. 그러려면 당내 기득권, 당내의 수구적 질서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선거 후 여의도에서 마주치는 '동료 의원'과 척지지 않으려는 고운 마음씨가 원내대표를 '원내'에 가둔다. 지난 시절 민주당의 낮은 생산성, 엉뚱한 판단 등이 '갇힌 원내'에서 비롯됐다.

민주주의에서 선거결과는 민의를 확인하는 최고 권위의 지표다. 그 민의의 총량만큼 '권위적으로' 원내전략을 수립, 실천하는 행위는 정당하다. 민주적 권위는 정치가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힘이다. 민주적 권위를 불온시하면서 관료적 권위(검찰)만을 정당하게 여긴 풍토가 검찰독재를 발아시킨 토양이기도 했다. 정상적인 민주국가라면 민주적 권위가 관료적 권위를 통제한다. 민주적 권위의 힘을 적절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이가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가 되기를 바란다.


P.S. 제21대 국회 더불어민주당의 '원죄'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과감하게 다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원내대표는 원내 국회의원을 대표하는 성격이었다. 지금부터는 '원내에서 민심을 대표한다'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바뀌려면 원내대표 선출권을 국회의원들만 갖는 문제부터 고쳐야 한다. 국회의원 선출권이 원내대표의 대표성에서 민심을 제척하는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보아서다.

다만 논의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이 주제는 다음 기회에 다루고자 한다. 이 글의 중심 말인 '원내대표'를 국회의장이나 당대표로 바꿔 읽는 것 또한 필자가 주장하는 바와 원리적으로 같다. 이 사안 역시 다음 기회에 다루고자 한다.

태그:#민주당, #더불어민주당, #22대국회, #민주당원내대표
댓글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