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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환경, 그리고 공동체 위기는 인류와 지구생태계가 직면하고 있는 지속가능성 위기의 대표적인 영역이다. 기후재앙을 막을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국제사회가 제시한 '1.5도'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최근 과학계의 연구는 이 목표가 깨지는 시점이 앞당겨지고 있다는 결과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미세먼지를 코끝에 달고 살고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이 다시 밥상 위에 오르는 환경위기의 악순환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자연과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 및 사회 불평등 확대, 끊임없는 전쟁 등 사회생태계의 지속가능성 위기가 해결될 기미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지구의 지속가능한 삶을 옥죄어 오는 지금의 기후, 환경, 공동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중심성에서 찾아 볼 수 있다(Bookchin, 2012). 인류의 탐욕으로 자연환경을 착취한 결과이며, 산업자본주의의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인류의 살아가는 방식으로 정착되면서 지구생태계 파괴라는 피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46억 년의 지구 역사가 불과 2백여 년간의 산업화로 인해 파괴되고 있으며, 현 인류는 그러한 종말을 결정짓는 마지막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 1989)이 엔트로피 세계관을 역설하면서 한 '현세대가 지구의 파수꾼이 아니라 파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적으로 들리는 이유이다.

인간중심적 세계관이나 능력주의는 근대적 교육제도에도 여과 없이 투영되어 교육 주체들을 소비자와 생산자로 구분하고 가르침을 서비스로 규정하며 배움을 도구화하는 데 집중하였다. 교육의 목표는 학습자들을 일반화시키는 것이고, 이를 위한 교육과정은 표준화된 것이며, 그리고 학습의 결과는 측정 가능한 것으로 점철되어 왔다. 교육의 목표, 과정, 결과 이 모든 측면이 예측되고 보여지고 측정되는 것에만 집중되어 온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이 훼손되고 상호 신뢰가 무너지고 지속가능한 공존이 파괴되고 있는 원인은 이러한 교육제도하에서 성장한 기성세대, 바로 우리들의 잘못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이대로 간다면 자연생태계뿐만 아니라 사회생태계도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전환하지 않는다면 지구생태계의 공멸은 우리 세대가 떠안아야 할 책임이 될 것이다.

생태적 전환이 단순히 자연 친화나 환경 보존을 위한 현상 유지 내지는 회복적 변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류가 미래세대와 비인간 존재와의 상생을 위해서 인간 중심성으로부터 탈피하고, 기존의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총체적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생태전환이란 인류문명(Anthropocentrism)에서 생태문명(Ecocentrism)으로의 문명사적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교육현장에서는 지난 몇 년간 '생태전환교육'이 추진됐다. 하지만 필자는 미래교육을 위한 시민사회계약을 제안하면서, '생태중심교육'을 기존의 생태전환교육과 두 가지 점에서 차이를 두고자 한다.

첫째는 기존의 생태전환 교육이 그 본래 취지를 십분 담아내지 못하고 환경교육에 치중해 왔던 한계와 구분지을 필요가 있다. 그동안 교육현장의 생태전환 교육이 주로 에너지나 환경 보존과 같은 주제에 집중해 왔다면, 생태중심교육은 자연생태계뿐만 아니라 사회생태계의 지속가능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역할을 두루 포함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둘째는 '생태적 전환'이라는 표현에는 전환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생태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생태가 수단과 방법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이제는 교육의 목표이자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기존의 생태전환교육과 구분하여 생태중심교육을 강조하고자 한다.

생태(生態)란 문자 그대로 '살아가는 모양' 또는 '생명성을 유지해 가는 방식'을 뜻하며, 이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생태계'란 여러 요소가 유기적 관계성을 가지고 집단의 생명성을 유지해 나가는 복잡한 체계나 질서를 의미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지구생태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란 현세대의 인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와 비인간 존재를 두루 포함한다. 따라서 생태민주주의란 사람과 더불어 다른 생태적 존재들이 서로의 권리와 참여를 전제로 만들어 가는 공동체적 접근이며(구도완, 2018), 사람만 주인인 세상이 아니라 사람도 주인인 세상을 만드는 정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생태민주주의를 위해서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책임과 실천의 역량을 기반으로 하는 생태시민성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가정은, 학교는, 그리고 지역사회는 아이들이 숨 쉬고 살아갈 만한, 그래서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건강한 생태계인지를 자문해 봐야 한다. 생태중심교육이란 비단 환경교육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중심성에서 탈피하고, 생태적 시민성을 바탕으로 생태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인류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생태가 교육적 수단이나 방법이 아니라 교육의 중심이 되는 것, 다시 말해서 '온 삶을 위한 교육'이 바로 생태중심교육이다.

교육에 있어서 이러한 생태적 전환은 일부의 관심과 참여로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의 문제가 학교만의 책임이 아니듯, 미래를 위한 교육체제의 전환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동참이 전제되어야 한다. 경쟁에 기반한 능력주의가 우리의 아이들을 더 이상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르침을 서비스로 치부하고 배움을 소비자의 권리로 제한하는 교육자본주의 하에서 교육에 대한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이기기 위한 것에서 잘살기 위한 것'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생태중심교육에 대한 합의를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상생의 교육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학교에 힘을 실어 주고, 가정과 지역사회가 교육의 책임을 함께 지기 위한 참여의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해 현세대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교육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변혁적 믿음을 가지고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지구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우리 세대가 결정하여서는 안 된다. 우리 다음 세대도 최소한 우리와 같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나 자신을, 우리의 가정과 학교를, 그리고 지역사회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교육생태계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고 행동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구도완(2018). 생태민주주의. 한티재.
김용련(2023). 생태중심교육 방향과 사회적 합의를 위한 구상. 제2차 서울혁신미래교육포럼 자료집.
김용련(2024). 생태중심교육을 위한 시민 사회계약 제안: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미래교육.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259호.
Bookchin, M(2012).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 서유석 옮김. 메이데이.

덧붙이는 글 | NPO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교육칼럼에 기재된 내용의 일부를 수정한 글입니다.


태그:#생태중심교육, #생태적전환, #미래교육, #교육공동체, #교육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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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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