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대한 첫 공개변론이 개최됐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대한 첫 공개변론이 개최됐다.
ⓒ 헌법재판소

관련사진보기

 
정부의 기후대응 계획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이 지난 23일 열렸습니다.

이날 공개변론은 2020년 3월 기후환경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이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약 4년 1개월만에 열린 것입니다. 공개변론은 헌재에 제기된 다른 기후소송 3건도 병합해 진행됐습니다.

헌재에는 한해 2000건 이상의 사건이 제기됩니다. 이중 헌재가 공개변론을 여는 경우는 채 10건도 되지 않습니다. 즉, 헌재 역시 이번 사건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단 뜻입니다.

이종석 헌재소장은 공개변론을 시작하면서 기후소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소장은 "(스위스 환경단체가 제시한 소송 결과) 최근 유럽인권재판소는 (스위스 정부의 기후대응 정책이) 스위스 여성노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선고했다"며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돼 국민적 관심도 더 높아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중요성과 국민적 관심을 인식하고 충실하게 심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의 말을 반영이라도 한 듯 이날 공개변론이 열린 대심판정(104석)은 만석에 가까웠습니다. 또 헌재는 대심판정 옆 소심판정(40석)에서도 실시간 중계방송을 시청하도록 방청객들에게 개방했습니다.

"부실한 기후대응 기본권 침해 vs. 무리한 감축목표 되레 기본권 침해"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청구인들의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지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과 시행령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으로 설정했습니다.

청구인 측에서는 현재의 감축목표가 불충분할뿐더러,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정부 측은 현재의 감축목표가 충분하단 입장입니다. 나아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감축목표가 되려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단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오후 2시부터 5시간가량 진행된 첫 공개변론에서 기후소송 청구인과 정부 쪽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습니다.
 
2023년 12월 저먼워치 등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 기후변화대응지수는 67개국 중 64위로 평가됐다.
 2023년 12월 저먼워치 등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 기후변화대응지수는 67개국 중 64위로 평가됐다.
ⓒ NCI 제공, 기후솔루션 번역

관련사진보기

 
"대한민국의 기후변화대응지수는 67개국 중 64위로 산유국들과 함께 최하위로 평가되는 수준이다."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 윤세종 변호사

청구인 측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불충분함으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함으로써 위헌이란 점을 강조했습니다.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을 맡은 윤세종 변호사는 "파리협정체제에서는 각 나라가 각자의 책임을 다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대한민국은 배출 책임이나 감축 역량을 고려할 때,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윤 변호사는 이어 "대한민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파국적인 수준의 온도 상승을 야기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되는 것이 과학적 판단"이라며 "선진국이자 (온실가스) 다배출국가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나 감축 이행을 보장할 법적 장치가 없는 점도 지적됐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에 의하면, 세부 이행계획을 다룬 탄소중립기본계획은 20년을 계획기간으로 수립돼야 합니다.

허나, 지난해 4월 나온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은 2031년부터 2042년까지의 계획이 없는 상태입니다.

청구인 측 이병주 변호사는 "2031년 이후 감축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법률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그는 "독일 기후소송에서도 이 부분이 문제가 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독일 정부는 판결에 따라 후속 입법이 이뤄져 2030년까지 배출량 감축목표를 65%로 강화하고, 2040년까지 88%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감축목표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누구도 정치적·헌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이로 인한 감축 부담과 피해를 미래세대에게 전가해 헌법상 환경권과 생명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청구인 측은 주장했습니다.

한편, 청구인 쪽은 현재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이뤄지더라도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기온 상승폭이 금세기말 2.9℃에 이를 수 있단 유엔환경계획(UNEP)의 배출량 격차 보고서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보고서에 의하면,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우리나라의 감축목표 이행 격차는 18%입니다. 감축목표와 달리 실제 기후대응 정책의 이행이 느리단 뜻입니다. G20 회원국 중 캐나다(27%)와 미국(19%) 다음으로 높은 것입니다.

또 지난해 12월 국제평가기관 저먼워치 등이 발표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자료를 인용해, 한국의 기후대응이 67개국 중 64위를 기록했단 평가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2015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2030년 G20 회원국별 NDC 내 이행 격차 현황
 2015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2030년 G20 회원국별 NDC 내 이행 격차 현황
ⓒ UNEP 제공, 그리니엄 번역

관련사진보기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기후재난 발생 가능성만으로 구체적 직접적 생명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정부 측 대리인 김재학 정부법무공단 변호사

정부 "온실가스 감축목표 충분… 현실적 최적 목표 수립 중요"

반면 정부 쪽에서는 현재의 감축목표가 충분하단 입장입니다. 나아가 파리협정이 우리 헌법보다 상위에 있지 않단 점을 언급하며 나라별 상황에 따라 목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단 주장을 펼쳤습니다.

정부 측 대리인인 김재학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에너지 소비가 많단 환경적 요인이 있다"며 "경제구조가 제조업 중심으로 온실가스 감축이 어려운데도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석유화학·철강·반도체 등 탄소저감이 어려운 제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28%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들 산업계와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도 고려돼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이상적인 목표 수립이 아니라 현실적인 최적의 목표 수립에 있다"고 김 변호사는 피력했습니다.

무리한 감축목표가 도리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또 2031년 이후 감축목표가 없단 청구인 쪽의 주장에 대해선 정부 측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에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명확히 선포했단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이에 정정미 재판관은 "20년이란 기간에 어떤 기준선 없이 내버려도 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국가 최상위계획에서 2031년 이후 계획이 없을 시 하위법령이나 감축목표 달성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냐는 것이 정 재판관의 질문입니다.

김 변호사는 "(파리협정은) 진전의 원칙에 의해 강화된 감축목표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며 "2031년은 체크포인트다"라고 밝혔습니다.

이후에는 탄소중립기본계획을 계속 보완 수정하며 감축목표를 보완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정부 측 변호인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기후재난의 가능성만으로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기성세대와 미래세대를 구분하는 것이 옳지 않단 의견도 제시했습니다.

한편, 청구인이 인용한 기후변화대응지수에 대해서는 방법론이 검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일축했습니다.
 
기후헌법소원과 관련해 청구인과 정부 측은 쟁점별로 입장이 다르다.
 기후헌법소원과 관련해 청구인과 정부 측은 쟁점별로 입장이 다르다.
ⓒ 그리니엄

관련사진보기

 
"탄소예산·기준치 산출·감축목표 세부 규정 두고도 공방 이어져"

이밖에도 세부 쟁점을 둘러싸고 청구인과 정부 측은 열띤 공방을 이어갔습니다. 공개변론 내내 언급된 단어 중 하나는 '탄소예산'입니다. 탄소예산은 지구 평균기온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 억제를 위해 배출할 수 있는 남은 탄소배출량을 뜻합니다. 현재 5,000억 톤가량 남아 있습니다.

청구인 쪽 이병주 변호사는 "현재 남은 세계 탄소예산을 각국의 인구 비례 기준으로 나누면 한국은 33억 4000만 톤"이라며 "한국은 2030년 이전에 1.7℃ 예산까지 다 소진된다"고 밝혔습니다. 남은 탄소예산의 상황을 고려할 시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단 것이 청구인 측의 주장입니다.

반면, 정부 측 정한결 변호인은 "탄소예산은 국가별로 배분하는 방식은 사실상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탄소예산은 전지구적인 추정치일 뿐, 인구 비례로 임의적으로 국가 배분을 하는 것이 파리협정의 취지와 맞지 않단 것이 정부 측 말입니다.

또 정부가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안에서 '이중기준'을 사용한 것을 놓고도 질문이 나왔습니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기로 하면서 감축 기준연도인 2018년에는 '총배출량'을 사용했습니다. 목표연도인 2030년에는 '순배출량'을 적용했습니다. 쉽게 말해 기준치 산출 방식이 달랐단 것.

순배출량 방식으로 통일할 시 2030년 총배출량이 2018년 대비 30% 수준에 머문단 지적이 나온 바 있습니다.

이에 문형배 재판관은 "투명하고 일관되게 순배출량을 적용하면 목표와 비교가 좋지 않냐"면서 "목표 연도가 계속 바뀌고, 중간 점도 바뀌고, 총배출량과 순배출량 개념이 모두 섞여서 국제사회나 환경단체가 정부의 조치가 투명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게 아닌가"라고 물었습니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나온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는 순배출량을 기준으로 한다"며 "(기준점이 다르단 것은) 과학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 측은 "(순배출량 기준은) 교토의정서에서 선진국이 취한 방식"이라며 "기준을 통일하는 문제는 앞으로 기본계획에서 반영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감축목표 이행에 필요한 세부 규정과 기준 역시 쟁점이었습니다.

감축계획의 이행의 확실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이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정부 측은 "전지구적 이행점검(GST)와 투명성 체계를 통해 이룰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감축 이행은 2년마다 격년투명성 보고서(BTR) 형태로 국제사회에 제출하기 때문에 상당한 압박이고 국가 신임도에도 영향을 준다"고 정부 측은 부연했습니다.

다만, 정부 측 참고인으로 나온 안영환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는 "(2030년까지) 6년밖에 남지 않아서 녹록지 않은 목표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오는 5월 21일 추가 공개변론 예정

헌재는 총 2차례의 공개변론을 비롯해 청구인과 정부 측이 각각 낸 의견서를 심리할 예정입니다.

이후 탄소중립기본법 등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판단합니다. 다음 공개변론은 오는 5월 21일로 잡혔습니다.

헌재가 법률 위헌을 결정하기 위해선 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해야 합니다. 만약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탄소중립기본법과 탄소중립기본계획 모두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후테크·순환경제 전문매체 그리니엄(https://greenium.kr/)에도 실립니다


태그:#기후소송, #헌법소원, #기후위기, #온실가스감축목표, #기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세대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기후위기라고 생각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술과 토론이 답이라고 생각. 사실과 이야기 그리고 문제의 간극을 좁히고자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중. ■ 이메일 주소: yoon365@greenpulse.kr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