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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을 앞둔 수박하우스에서 만난 농민, 올해는 밤낮의 기온차가 크고 비가 잦은 날씨 속에 과일 가격 상승으로 소비가 원활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고 한다.
 수확을 앞둔 수박하우스에서 만난 농민, 올해는 밤낮의 기온차가 크고 비가 잦은 날씨 속에 과일 가격 상승으로 소비가 원활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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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외국인들 품삯은 얼마나 줘야 혀?"

농촌의 일손은 이제 외국 노동자들에게 의지한 지 오래다.

"인건비 빼면 남는 게 있간디... 농자재 값도 해마다 오르는디 수확량은 제자리이니 살 수가 있간..."

시골은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 비율이 높아서 매년 오르는 농사 비용과 농산물 가격에 민감하다. 도시에선 장바구니 물가로 기준을 삼지만 시골 마을의 물가는 농자재 비용과 인건비 상승 폭이 척도가 된다.

"올해 두릅 가격은 어땠어요?"

부여군 충화면에서 두릅 농사를 짓는 조아무개씨에게 물어보았다. 신선한 채소가 부족한 겨울과 봄 사이에 사랑받는 두릅은 항상 높은 가격을 받아왔다. 

"소비가 안 된대유. 가격이 작년만 못혀유. 날씨가 이상해서 두릅이 일찍 펴버려서 그나마 팔 것도 별로 읎슈. 인건비 뽑기도 어려웠슈."

두릅은 수확 시기가 1년에 단 2주밖에 되지 않아, 봄철 농가의 고소득 농산물이다. 하지만 올해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소비 부진과 기후 변화에 따른 생산량 감소라는 암초까지 만났다.

최근 몇 년 '돈 좀 만져봤다'는 소리 거의 못 들어
 
연휴와 기념일이 많은 5월을 겨냥해 수확 시기를 잡아서 농사를 지은 수박
▲ 수박이 익고 있는 하우스 연휴와 기념일이 많은 5월을 겨냥해 수확 시기를 잡아서 농사를 지은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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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부여에서 시설하우스나 원예 작물, 산림 작물 등의 농민들에게 농사지어서 돈 좀 만져봤다는 소리를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날씨가 도와주면 생산량이 증가해 가격이 떨어지고, 가격이 좋을 때는 농민들에게 팔 물건이 별로 없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사이클 속에서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외부적 요인까지 시골 마을의 물가를 사정없이 흔들고 있다.

"올해 수박꽃 수정할 때 비가 계속 내려서 벌들이 일을 제대로 못 할까봐 얼마나 마음 졸였나 몰라. 다행히 수박이 잘 열리기는 했는디 과일값이 비싸서 덩달아 수박까지 덜 먹으니 농민들은 돈을 만진다고 볼 수도 없다니께. 요즘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고 비가 잦아서 수박도 잘 안 팔린디야. 농사는 도깨비 살림이여."

수박 수확을 열흘 앞둔 농민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농부들은 농산물 가격이 높아지면 소비가 부진해지는 악순환을 알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것보다 항상 일정한 가격을 받기를 원한다. 한 알의 씨앗을 뿌려서 한 주먹의 곡식과 축구공 같은 수박을 따는 단순한 보람을 농사일에서 느끼길 원한다.

"사과와 배가 비싸면 외국에서 싼 과일들을 수입하것쥬. 이제 기후도 변한다는데 우리도 바나나 농사짓는 거나 미리 배워야 헐 것 같유."

한 달에 한 번 여행 삼아 다니는 산악회에서 나눠주는 간식거리로 흔하게 먹던 귤과 방울토마토도 자취를 감췄다. 그 흔했던 사과와 배는 몸값이 너무 올라 사과 맛 주스로 대신하고 있다는 댓글을 보며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토종 과일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한국인의 입맛도 이제 바나나 맛에 길들여지는 중이다. 바나나 농사를 배워야겠다는 농민들의 말은 자조가 아니라 자구책이다.

"어버이날이고 뭐고 내려오지 말라고 해야 할라나벼"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민들은 때가 되면 부지런하게 심고 수확하지만 항상 고물가와 소비부진, 인건비 상승, 농자재 비용 증가 등의 위험 부담 속에 농사를 짓고 있다.
▲ 멜론을 심은 하우스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민들은 때가 되면 부지런하게 심고 수확하지만 항상 고물가와 소비부진, 인건비 상승, 농자재 비용 증가 등의 위험 부담 속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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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나 주말에 도시에 사는 애들이 오면 구드래 소고기 집에 가서 소고기를 실컷 먹이고 왔는데 이제 식구대로 다 데리고 가면 돈 백만 원이 훌쩍 넘게 생겼다니께. 어버이날이고 뭐고 내려오지도 말라고 해야 할라나벼."

"소값은 떨어진다는데 소고기값은 왜 그대로죠?"

"중간 업자들이 잘 안 팔리는 부위의 가격을 잘 팔리는 등심 같은 데에다 덮어씌우니까 그렇지. 그것뿐인감? 입이 없어서 말을 못하간디... 그냥 소주나 마셔. 알면 다치는 세상이잖여."


가정의 달에 들어서면 외식 물가를 살피기 마련이었다. 이미 과일, 채소 가격이 촉발한 외식 물가가 5월에 다시 오를 낌새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비효과인지 도미노 효과인지 농업 생산량과 기후 변화, 물가 상승, 소비 둔화는 언제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돌아간다. 만 원 한 장을 기준으로 하던 밥상 물가가 오 만 원권으로 급격하게 갈아타고 있다.

부여 읍내 식당 메뉴판 음식 가격도 해가 바뀌면서 한 차례 올랐는데, 음식점 사장은 그래도 남는 게 없어서 더 올려야 한다며 손님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한다. 매년 가격이 오르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면서도 올해는 유난히 상승 폭이 가파르고 특히 과일과 채소 가격이 높은 물가 상승률을 견인하고 있다.

"적어도 삼겹살 살 정도는 돼야 밥 한번 먹자는 소리도 하는데 이제 그런 말 하는 것도 지갑 눈치 봐감서 혀야 혀."

"난 소줏값 아직 안 올린 식당만 찾아 다닌다니께. 소줏값이 4천 원으로 올라간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5천 원 받는 집들이 많다니께. 쌀값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디... 이러니 열받아서 밥은 안 먹고 빈속에 대꾸(자꾸) 소주만 들이붓게 된다니께."


시골은 여전히 작목반, 영농 조합 등의 공동체 활동이 활발하고 그런 모임 중심으로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농사를 지으며 서로 품앗이하고 함께 밥을 먹는 인심이 남아 있는 시골 마을에서 물가가 너무 오르면 밥 인심이 박해지고 공동체의 연결고리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별이 내리는 시골집 마당에서 솥뚜껑에 삼겹살 구워 먹다가 오가는 사람들을 다 불러 고기 한 점씩이라도 먹여 보내는 인심을 구경하기 어렵게 된다.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석 달 만에 2%대로 내려왔다. 세부적으로 사과·배 등 과일 가격은 상승률이 가팔랐고 국제정세 요인으로 석유류 가격도 2개월째 오름세를 보였다. 다만 전체 농축수산물·개인 서비스 등 가격 상승폭이 소폭 잦아들면서 물가 상승률은 3% 선을 밑돌았다." <머니투데이> 2024. 5. 2

신문 기사는 이렇지만 시골 마을 부여의 체감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고공행진은 부여 구드래 벌판에서 열기구가 뜰 때나 써야 하는 말인데 소비자물가에 붙이는 현실이 안타깝다.

농촌에서 농민들이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농사를 짓고 안정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오기는 하는 걸까?

태그:#고물가, #인건비상승, #농자재값인상, #충남부여, #부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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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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