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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전세사기 대책위에서 활동하던 전세사기 피해자가 1일 세상을 떠났다. 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주최로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여덟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정태운 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장이 '고인께 드리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대구 전세사기 대책위에서 활동하던 전세사기 피해자가 1일 세상을 떠났다. 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주최로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여덟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정태운 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장이 '고인께 드리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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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잘 살고 싶었습니다."

국회 정문 앞에 선 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장 정태운씨가 손에 든 유서의 문장들을 한참 들여다봤다. 같이 활동하던, 그 역시 전세사기 피해자였던 동료의 죽음에 정씨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200자 분량의 글자들을 불러냈다.

"괴롭고 힘들어 더 이상 살 수가 없겠어요.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국민도 사람도 아닙니까. 너무 억울하고 비참합니다. 살려달라 애원해도 들어주는 곳 하나 없고 저는 어느 나라에 사는 건지..." - 여덟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유서 중

여덟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A(38)씨의 유서 중 일부다.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모인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A씨의 유서와 정씨가 A씨에게 쓴 편지 내용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꼭 그래야만 했습니까. 왜 제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늘 피해자들에겐 친절하게 다 챙겨주면서 왜 정작 본인은 챙기지 못했습니까. 제가 더 열심히 다니며 잘하겠다고 약속드릴 테니 한 번만 다시 돌아와 주시면 안 될까요..." - 정태운 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장

A씨의 남편도 일주일 전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전하는 편지를 써서 이날 정씨에게 보냈으나, 가족을 잃은 충격 때문인지 편지는 끝내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숨진 날에야 '피해자' 인정...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아"
 
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주최로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여덟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주최로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여덟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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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1일 세 장짜리 유서를 남기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19년 당시 전세보증금 8400만 원을 내고 대구 남구 한 다가구 주택에 입주했으나,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됐다. 그는 보증금을 회수할 수 없는 후순위 임차인인 데다 소액임차인도 아니어서 보증금의 30% 남짓을 변제해주는 최우선변제금 대상자도 아니었다. 그는 지난 2월 대구전세사기대책위원회 활동을 시작했다.

최우선변제금은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소액임차인이 다른 채권자에 우선해 돌려받을 수 있는 법정 금액을 말한다. 올해 기준 대구에서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있는 소액임차인 기준은 전세보증금 8500만 원 이하인데, A씨가 계약한 2019년에는 그 기준이 6000만 원 이하였다. 8400만 원을 낸 A씨는 입주 당시 소액임차인에 해당하지 않았다.

A씨는 지난 4월 12일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 요건 중 '경매개시결정 등' 내용을 충족하지 못해 전세사기 특별법상 '피해자'가 아닌 '피해자 등'으로 분류됐다. 그는 사흘 전인 4월 9일 살던 건물의 경매 개시가 결정되면서 이의신청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의신청 끝에 그는 지난 1일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서 '피해자'로 뒤늦게 인정받았으나, 이미 숨진 뒤였다.
 
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주최로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여덟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주최로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여덟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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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1명), 2023년 4월(2명), 2023년 5월(2명), 2023년 6월(1명), 2023년 7월(1명) 그리고 2024년 5월(1명). 이번까지 전세사기 피해자의 죽음이 공개적으로 알려진 것만 여덟 번째다. 대구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오마이뉴스>와 만난 A씨의 동료들은 그를 '밝고 씩씩했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대구 간담회에서 그를 만난 적 있다는 석진미(경산전세사기피해대책위 공동위원장)씨는 "피해자들이 나서서 발언하기가 쉽지 않은데 고인은 자신의 상황을 직접 이야기할 만큼 밝은 성격이었다"라며 "혼자 사시는 분이 아닌데도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아무리 외쳐도 절망만 되풀이될 뿐 달라지는 게 없다"라고 밝혔다.

정태운씨는 지난 3일 A씨와 같은 건물에 사는 피해자로부터 그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숨도 자지 못했다"는 그는 "고인은 여장부처럼 씩씩하고 똑똑한 분이었다"라며 "다른 피해자들에게 먼저 다가가 도움을 드렸던 분이라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달랐을까. "그래도 이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정씨의 답변은 비관적이었다.

"유서를 다 공개하지 못해서 그렇지 8400만 원은 고인이 인생 전부를 바친 돈이었어요. 특별법 개정안이 있었어도 최우선변제금(보증금의 30%)만 받고 말 건지, 다음에 다른 법안이 나올 때까지 조금 더 버틸 건지 피해자들은 선택해야 해요. 당장의 어려움을 넘길 순 있어도 이번 개정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어요."

"다가구주택 후순위 피해자 특별 대책 필요해"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려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특별법 개정을 방해해 온 정부와 여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더 이상 죽이지 마라"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려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특별법 개정을 방해해 온 정부와 여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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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동료를 비롯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회에서 여야가 '선 구제, 후 회수' 방침을 담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즉각 통과시켜야 한다"며 "나아가 최우선변제금도 못 받고 무일푼으로 쫓겨날 위기에 있는 다가구 주택 후순위 피해자와 신탁사기 피해자에 대한 특별한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A씨를 기리는 묵념을 시작으로 발언을 이어갔다. '전세사기 피해, 당신의 책임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은 얼굴 없는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국화를 내려놓았다. 일부는 헌화를 마친 뒤에도 눈물을 흘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장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운을 떼며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가해자를 엄벌하고 개인이 할 수 없는 구상권 청구를 정부가 대신해 달라는 것 그리고 전 재산을 잃고 길거리로 쫓겨나는 상황을 국가가 막아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억울하고 암담한 상황에도 대구의 희생자는 소리 내어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했고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라며 "하루하루 지옥에서 견디고 있는 2만 명에 가까운 피해자들이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단체의 이철빈 공동위원장도 "작년에만 피해자 일곱 분이 돌아가셨다. 전세사기로 살아갈 희망을 잃어서, 두 배로 뛴 전세대출 이자에 '투잡'을 하다 과로해서,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해서 세상을 떠났다"라며 "특별법 피해자로 인정받아도 여전히 일상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기약 없는 도움을 기다려야 하느냐"라고 항변했다.

이 위원장은 갈라진 목소리로 "(기자회견 중계) 영상을 보는 전국의 피해자들이 죽지 말고 조금만 더 버텨주시길 바란다. 저희를 봐서라도 조금만 더 버텨주시길 바란다"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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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인 이강훈 변호사는 "여덟 번째 희생자는 돌아가신 날 피해자로 인정됐으나 현행법상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일가족이 쫓겨나야 하는 사정이 달라지지 않았다"라며 "공무원과 교사도, 청년층과 장년층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전세사기 피해자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대출을 연장하는 금융 대책 위주의 특별법이 아니라 정부가 보증금 채권을 매입해서 피해자들을 대신해 임차권 등기와 소송 등 지긋지긋한 절차를 지원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문을 대표로 읽은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이번의 죽음은 스스로의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잘못된 제도와 전세사기를 방치하는 국가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보증금을 돌려받을 방법도, 경·공매 우선매수권을 활용할 방안도 없는 현행법의 사각지대에서 고인은 절망했다.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과 대책 마련을 위해 정부와 여야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아달라"고 촉구했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피해자의 전세보증금을 정부 기관이 우선 지급하고, 추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비용을 보전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야당은 이달 말 열리는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전까지 이를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정부와 여당은 다른 사기 피해자와 형평성,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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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들 절규' 또 숨진 전세사기 피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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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세사기, #전세사기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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